한국의 최다 관객 영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수를 동원한 영화가 무엇일까? 2014년 7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명량]은 무려 관객수가 1700백만이 넘는다. 2023년인 지금까지도 그 기록은 무너지지 않고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명량]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을 다룬 영화로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연출하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생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45년 4월 28일 한성의 건천동에서 덕연군 이정의 사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래 명문가였던 집안이 몰락하여 경제적 빈곤으로 충남 아산의 외가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책에서 읽은 병법을 이용한 전쟁놀이를 즐기고 마을에서 사고뭉치로 골목대장 행세를 하였으나 모친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철이 들게 된 이순신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를 하며 성장을 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글공부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오랑캐와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백성과 가족을 지키고자 무관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군사학과 무술등을 익히며 무과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28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무관시험에 응시하여 궁술, 창술, 검술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마지막 시험인 말타기를 하다가 낙마사고로 아쉽게 낙방하였고, 4년 뒤인 32세에 비로소 무과에 합격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의 첫 무관생활은 함경도 동구비보에서 국경을 수비하는 장교로 시작하게 된다. 첫 근무지인 동구비보는 성벽이 거의 허물어지고 무기는 녹이 슬어있고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진 상태였다. 이순신 장군은 가장 먼저 무기를 고치고 성벽을 보수하고 병사들을 훈련하였다. 그렇게 동구비보는 얼마 되지 않아 오랑캐들이 넘보지 못하는 요새를 만들었다. 3년 뒤 훈련원 봉사로 승진하여 한양으로 발령 나게 되지만 그의 관직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워낙 강직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성격 때문에 상관들로부터 모함과 미움을 받아 승진이 늦어지게 된다. 그러다 1589년에 유성룡의 추천으로 정읍 현감으로 부임하게 되고 2년 후 인 1591년에 전라 좌수사로 임명되어 전라도의 수군을 총괄하게 된다.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침략을 대비하여 허술한 수군의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기가 떨어진 군인들의 군기를 확립하고 군비를 확충하였으며 전함을 건조하고 무기를 정비하였다. 당시 조선은 전쟁에 왜구 침략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지나치게 경계한다고 여겼지만 마침내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약 삼십만 대군의 왜구가 700척의 함대를 이끌고 부산포로 진격해 왔다. 전쟁 소식을 들은 이순신 장군은 1592년 5월 4일 해군을 모아 출전하여 옥포, 당항포, 한산도 부산포 등 해전에서 크게 승리하게 되고 공을 인정받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외교활동으로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일본의 계략과 조선의 정치적 갈등의 희생양이 되어 직위를 박탈당하고 죄인의 신분이 된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선조 임금에게 사형 선고를 받지만 조정과 백성들의 탄원으로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가 여러 고초를 겪는 동안 2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원균은 1597년 7월 칠전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전사한다. 당황한 조정은 이순신 장군을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하게 되고 그는 다급히 복귀하였으나 이미 처참히 무너진 수군만 남아있었다. 여러 장교들과 재정비를 하였지만 남아 있는 함선이 겨우 12척이었고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지형을 활용한 작전을 세우게 된다. 1597년 9월 명량해전이 발발하게 되었고 새로 1척의 배를 건조하여 총 13척의 전함과 어선을 대동하여 출전했다. 명량 해협의 울돌목의 조류를 이용하여 130여 척의 왜군과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둔다. 이전투로 조선 수군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되고 절망에 빠진 백성들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게 되었다. 다음 해인 1598년에도 전투는 끊이지 않았다. 9월 왜군 수장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사하자 철수를 준비하게 되고 12월 16일 명나라와 연합해 노량해전에 참전한 이순신 장군은 도주하는 적을 끝까지 추격하다가 유탄을 맞고 전사하게 된다. 죽는 순간까지 전황이 불리해지지 않도록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숨이 끊어졌고 그의 죽음을 숨긴 채 전투를 하여 노량해전도 승리하게 된다.
그에게 배울 점
비록 역사 속의 인물이지만 이순신 장군에겐 배울 점이 많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졌고 고국에게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끝까지 나라를 위해 싸우는 충성심과 책임감을 가졌다. 또한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과 타협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이런 이순신을 본받으라는 교육을 하지만 결코 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본 적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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